RedBull(RB) - RB잘츠부르크 - RB라이프치히 - 랄프 랑닉 - 토마스 투헬 - 클롭 - 독일 - 챔피언스리그 ··· 언뜻 보면 무의미하게 나열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위 단어들. 이걸 보고 세계 축구의 흐름이 느껴진다면 당신을 진정한 축구팬으로 인정한다.
세계적인 음료 회사 레드불(Red Bull). 그들은 우리의 인식 속에 아주 조금씩 스며들어와 어느새 유럽 축구계의 트랜드를 이끄는 선두주자로서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가고 있다. 혹자들은 '그래 RB라이프치히 잘하고 있지. 잘츠부르크도 유망주 많이 나오는 좋은 클럽이야. 근데 무슨 축구계가 나오고 역사가 나오고... 너무 오버하는거 아니야?' 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이 끝날 때 쯤 그 생각은 180도 바뀔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이 글은 찬양글이 아니다. 그저 팩트만을 전하는 글임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 레드불 풋볼 프로젝트
오늘 포스팅의 첫번째 주제는 레드불의 풋볼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된다. 오스트리아의 세계적인 음료 회사 레드불(Red Bull)은 스포츠계에 많은 투자를 하는 그룹으로 유명하다. 전세계인이 즐기는 레이싱 스포츠 F1(Formula 1)을 비롯해 아이스하키, 크라켓, 랠리, 배구 등 여러 스포츠에 스폰을 하고 있으며, Red Bull Air Race World Championship 이라는 비행기 경주 대회를 조직하는 등 전세계 스포츠계에 깊게 잠식되어 있는 회사이다.
하지만 레드불이 축구계와 함께 하는 일은 다른 모든 스포츠 마케팅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스포츠에서의 투자는 약 200개국에서 판매되는 에너지 음료의 브랜딩 효과를 유지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의 일부라면 축구계를 향한 투자에서는 레드불이 직접적인 이윤을 발생시키고 있다.
그들은 마치 공장의 생산 라인처럼 유망주를 발굴하고 양육하고 판매하며 방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조슈아 킴미히, 엘링 홀란드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이 시스템 안에서 탄생했으며, 지금도 그들과 같은 수 많은 인재들이 레드불 시스템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
# 그 시작 - RB 잘츠부르크 (RB Salzburg)
2005년 레드불은 첫 번째 축구팀을 인수하기로 결정한다. 그 클럽이 바로 회사의 본부가 있는 마을인 푸슐 암 제(Fuschl am See)에서 불과 24km 떨어진 잘츠부르크 시의 SV 잘츠부르크였다. 당시 SV 잘츠부르크는 80년대에 2부리그로 강등되었던 경험이 있는 리그 중위권 팀이었다. 그들의 최고 기록은 1993/94 - 1994/95 - 1996/97 세 번의 시즌 우승이 전부였고 과거부터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는 오스트리아 빈과 라피드 빈의 독식 리그로 알려져왔다.
SV 잘츠부르크를 인수하고 FC RB 잘츠부르크로 이름을 바꾼 후 레드불은 구단의 Infrastructure(기초, 기반시설)과 인재 관리에 막대한 투자를 한다. 2017년 바이에른 뮌헨이 착안한 바이에른 유스 캠퍼스의 모태인 최첨단 설비의 잘츠부르크 유스 캠퍼스가 이 때 설립된다. 또한 스타플레이어들을 영입하고 명장 지오반니 트라파토니를 새 감독으로 임명한다.
이들의 투자는 매우 빠르게 결실을 맺었고 RB 잘츠부르크는 2005/06시즌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2위를 기록하며 리그 준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시즌 2006/07시즌 10년만에 리그 우승트로피를 차지한다. 그 이후 RB 잘츠부르크는 리그 2위 밑으로 순위를 마무리지은 시즌이 단 한 번도 없으며 2013/14시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리그 타이틀을 독식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릴, 세비야, 볼프스부르크가 속한 G조에서 2위로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할만큼 유럽에서도 경쟁력있는 팀으로 엄청난 성장을 했다. 이는 세계 최대 기업 중 하나의 자금력이 스포츠의 경쟁력을 어떻게 훼손시키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로도 설명할 수 있겠다. 과정이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잘츠부르크는 이제 세계적인 클럽 중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거대한 미국 시장 - 뉴욕 레드불스 (New York Red Bulls)
2006년 레드불이 두 번째 팀을 인수한다. 미국 MLS에서 중위권 규모의 팀을 인수하여 브랜드와 이름을 변경하고 앞서 SV 잘츠부르크의 사례와 동일하게 인프라와 인재 관리에 막대한 투자를 한다.
SV 잘츠부르크의 사례와 다른 점은 레드불이 시행한 MLS에서의 혁신적인 유소년 프로그램이었는데 뉴욕 시 전역과 그 주변에서 온 젊고 재능있는 선수가 레드불 스카우터에게 자신의 기술을 뽐내고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온 그 선수는 레드불에 의해 승인이 된 후 추후 다른 레드불 구단의 팀으로 승격하기 위해 다계층 유스 개발 시스템을 거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선수로 미국의 유망주 미드필더 타일러 애덤스는 레드불의 유스 프로그램에 의해 진가가 드러났으며 현재 레드불 프로젝트의 메인 팀인 RB 라이프치히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고 있다.
#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레드불
그 이후 2007년엔 레드불 브라질, 2008년엔 레드불 가나, 그리고 2009년엔 라이프치히를 차례로 인수하며 유럽(RB잘츠부르크, RB라이프치히), 북중미(뉴욕 레드불스), 남미(레드불 브라질), 아프리카(레드불 가나) 등 각 대륙의 유망주들을 육성한다. 또한 이 구단들은 그들만의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남미와 아프리카의 재능있는 선수들을 유럽 무대에 적응시키기 위해 잘츠부르크로 이적시키는 등 레드불만의 독자적인 인재 관리 네트워크 시스템을 강화한다.
또한 이러한 유스 시스템은 지속하면서 뉴욕 레드불스는 은퇴시기가 다가온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하여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보내게 하며 팀의 성적 또한 유지시킨다. 이것은 팀의 이미지 상승과 마케팅에도 효과적이다. 정말 잘 짜여진 거대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다. 프리킥의 귀재 주닝요, '킹' 티에리 앙리, 호주의 간판 스타 팀 케이힐 등이 레드불에서 황혼기를 보낸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레드불은 오스트리아 2부리그 구단 USK아니프를 인수해 FC리퍼링으로 구단명을 변경한 후 RB잘츠부르크의 유스 팜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리퍼링은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하더라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로 승격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알고있는 베르나르두(RB잘츠부르크), 다욧 우파메카노(바이에른 뮌헨), 콘라트 라이머(RB라이프치히), 도미닉 소보슬라이(RB라이프치히), 아마두 아이다라(RB라이프치히), 카림 아데예미(RB잘츠부르크) 등이 리퍼링에서 성장해 잘츠부르크를 거친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 레드불 프로젝트의 종착지 - RB 라이프치히 (RB Leipzig)
앞서 언급했듯이 레드불은 유럽(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북중미(MLS), 남미(브라질 세리에A), 아프리카 등 각 대륙의 리그에서 경쟁력을 갖춘 팀들을 만들었지만 그들은 좀 더 크고, 유럽 최고 리그 수준에서 경쟁할만한 팀을 찾아 더 큰 시장에 뛰어들길 원했고 언어적, 지리적 근접성을 갖춘 독일 분데스리가가 그들의 레이더망에 들어왔다.
처음에 레드불은 함부르크에 기반을 둔 FC 장크트 파울리, TSV 1860 뮌헨,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 같은 팀들을 인수하려 했으나 이사회나 서포터들 관련 문제로 실패했다. 그래서 레드불은 그 팀들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구단으로 눈을 돌렸고 라이프치히에서 13km 떨어진 마을에서 SSV Markranstadt 라는 작은 팀을 찾았다. 2009년, 독일 5부리그 Oberliga에서 뛰고 있던 이 클럽은 몇 주만에 레드불에 인수되는 것을 승인하였다.
레드불은 늘 그래왔듯이 구단의 명칭부터 바꾸려했다. 지명인 라이프치히를 따서 RB라이프치히로 구단명을 바꿨지만 독일 분데스리가 규정상 팀명에 기업 브랜드명을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RB라이프치히의 'RB'는 'Red Bulls' 가 아닌 'Rasen Ball Sport' 의 약자이다. 레드불의 유스 시스템 강화를 위해 RB라이프치히는 승승장구하며 위로 쭉 쭉 올라왔다.
어느새 독일 2부리그에 위치한 RB라이프치히. 더 큰 도약을 위해 2015/16시즌 랄프 랑닉이 RB잘츠부르크 단장직을 내려놓고 직접 RB라이프치히의 감독직을 맡게 된다. 랑닉은 감독에 부임하자마자 RB잘츠부르크의 핵심 선수였던 마르셀 자비처, 일잔커, 페트르 굴라시 등을 영입해 전력을 강화했고 그 뒤로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레드불의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단 7년만에 5부리그 팀을 1부리그 독일 분데스리가로 올리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2016/17시즌 처음으로 독일 분데스리가로 승격한 RB라이프치히는 첫 시즌에 13경기 무패행진을 기록하며 리그 2위라는 믿기지 않는 성적으로 독일 정상에 오른다. 유럽의 가장 권위있는 리그 중 하나에서 최고의 클럽을 만들겠다는 레드불의 야심찬 계획이 실현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 때부터 레드불 풋볼 프로젝트의 유망주 시스템은 가속화되며 더 많은 재능들이 쏟아져나오고 그들을 더 큰 리그로 판매해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된다. 그들의 네트워크는 해가 거듭될수록 그 규모가 더 커졌고 현재 레드불 프로젝트의 위상은 과거 라마시아(바르셀로나 유스 시스템) 못지않게 높아졌다.
# 핫해질 전망의 브라질 무대 - 레드불 브라간티노 (RB Bragantino)
남미 지역을 향한 레드불 프로젝트의 원조 팀은 레드불 브라질(RB Brazil)이었다. 그들은 상파울루 주 하위 디비전에서 빠르게 성장했지만, 라이센스와 같은 필드 밖 문제들로 인해 레드불과 그들의 프로젝트는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유망주들의 산물 브라질 리그를 절대 놓칠 수 없던 레드불은 2019년 브라질 리그에 두 번째 시도를 했고 결국 상파울루의 산악 도시의 소규모 전통 팀인 브라간티노를 인수하게 된다.
첫 해에 그들은 브라질 2부리그 세리에B에서 우승을 하며 1부리그 세리에A로 승격하게 되며 2020년엔 FC산투스나 팔메이라스, 상 파울루 등 1부리그 명문팀들의 유망한 재능들을 소위말해 '훔쳐오며' 어린 브라질 선수들에게 또 다시 막대한 투자를 감행한다.
2020년 1부리그 첫 시즌엔 10위, 2021년 두 번째 시즌인 올 시즌엔 6위로 점점 강한 팀으로 성장하고 있다. 브라질 리그는 남미에 속해 유럽 팀들과의 경쟁을 할 수는 없지만 아주 수준높은 무대로 잘 알려져있다. 이 곳에서 재능있는 선수들이 바로 규모가 큰 리그로 떠나 빅네임 구단에서 맹활약을 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가장 대표적으로 네이마르(산투스 → 바르셀로나)와 비니시우스 주니오르(플라멩고 → 레알 마드리드), 가브리엘 제주스(팔메이라스 → 맨체스터 시티) 등이 그러하다.
이렇듯 브라질 리그는 유망주들의 산물이며 전세계 스카우터들의 이목이 집중되어있는 곳이다. 여기에 과거 라마시아와 같은 위상을 펼치는 유망주 발굴 시스템의 최고 수준인 레드불 프로젝트가 더해졌으니 레드불 브라간티노는 앞으로 더욱 더 재능넘치는 어린 선수들이 발굴될 것이며, 더욱 더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시즌 아르투르 기마레스(23), 토마스 쿠엘로(21), 헬리오 주니오(21) 등 어린 선수들이 브라간티노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으니 그들의 행보를 한 번 주목해보자..!
# 레드불 프로젝트가 배출한 대표적인 스타
· 발렌티노 라자로 (Valentino Lazaro)
· 루카스 클로스터만 (Lucas Klostermann)
· 사디오 마네 (Sadio Mane)
· 나비 케이타 (Naby Keita)
· 엘링 홀란드 (Erling Braut Haaland)
· 스테판 라이너 (Stefan Lainer)
· 조슈아 킴미히 (Joshua Kimmich)
· 티모 베르너 (Timo Werner)
· 마르셀 자비처 (Marcel Sabitzer)
· 다욧 우파메카노 (Dayot Upamecano)
· 도미닉 소보슬라이 (Dominik Szoboszlai)
등등
※ 여기서 부턴 네이버 스포츠 공식 스토리텔러 '홍재민' 디렉터님의 포스팅을 일정 부분 참고하였습니다. 랑닉 감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 http://blog.naver.com/skipphong/222587660620
# 랄프 랑닉, 그는 누구인가?
"그래서 랑닉이 누군데? 우승 경력있어?"
실제로 파트리스 에브라가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이다. 감독 경력에서 커리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그 감독의 역량을 대변해주는 지표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커리어가 전부는 아니다. 허버트 채프먼, 리누스 미헬스, 마르셀로 비엘사, 펩 과르디올라와 같은 감독들처럼 확고한 철학, 뚜렷한 팀컬러, 이상적 스타일 등을 갖춘 감독들은 축구 전술에 혁신을 주어 축구계에 이름을 남긴다. 많은 지도자가 유럽 1부 우승 경력이 없는 마르셀로 비엘사를 추앙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랑닉 또한 후자 스타일의 감독에 해당한다. 최근 유럽 축구는 마치 체스와 같다. 자기 진영에서부터 (심지어 골키퍼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짧은 패스 위주로 빌드업을 해나가며 전진하고 상대가 공격을 전개할 때는 골키퍼에게까지 압박을 가한다. 공격을 전개하다가 볼을 빼앗기면 곧바로 '역압박(counter-press)'을 가한다. 또한 선수들은 삼각형 혹은 마름모꼴의 형태를 만들어 '포지셔널 플레이(positional play)'를 구사한다. 경기 내내 모든 선수가 끊임없이 뛰며 공격과 수비를 오간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현대 축구의 모습이고 이 모습을 만든 두 사람이 바로 펩 과르디올라와 랄프 랑닉이다.
아마추어 선수 출신인 랑닉은 20대 중반의 나이에 고향 팀인 FC빅토리아바크낭에서 감독 겸 선수로 지도자의 길을 시작했다. 첫 감독 부임 후 1년 뒤 명장 발레리 로바노프스키가 이끄는 디나모 키예프와 연습 경기를 치루고 그는 센세이션을 경험했다. 디나모 키예프의 구조적이고 강력한 압박에 큰 충격을 받고 '향후 축구의 미래는 이것이다.' 라는 강한 생각이 그의 머리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압박의 중요성과 전술적 가치를 끊임없이 연구했다. 이 때가 1990년대임을 감안해본다면 랑닉은 30년 후 축구계를 지배할 전술 트렌드를 이미 깨달았던 것이다.
# 하이-프레싱, 게겐-프레싱, 트랜지션 - 경기에서의 5가지 상황
랑닉을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전술 용어들이 있다. 랑닉은 "축구에는 5가지 상황(phase)이 존재하며, 뛰어난 팀일수록 이 5가지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라고 말한다. 5가지 상황은 아래와 같다.
1) 볼을 가졌을 때
2) 상대가 볼을 가졌을 때
3) 가졌던 볼을 빼앗겼을 때 (transition = 전환)
4) 빼앗긴 볼을 되찾았을 때 (transition = 전환)
5) 세트피스
하이-프레싱(high-pressing)은 '전방 압박'과 같은 개념이다. 상대가 골킥 빌드업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압박을 시작한다. 축구 규정이 페널티박스 안에서 골킥을 받을 수 있도록 바뀐 이 후로 하이-프레싱은 현대 축구의 기본 전술로 자리잡고 있다.
게겐-프레싱(gegen-pressing)은 상기 3번 상황에서 수비로 전환하지 않고 여러 선수가 즉시 압박하는 전술로서 '역압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현재 게겐-프레싱을 가장 잘하는 팀은 위르겐 클롭 감독의 리버풀이라고 할 수 있다.
랑닉 감독이 호펜하임 지휘봉을 잡고 있던 2008년, 호펜 하임과 도르트문트의 경기에서 위르겐 클롭 감독이 이끌던 도르트문트가 4-1 대패를 당한 이 후 클롭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내가 도르트문트에서 하고 싶었던 축구" 라면서 랑닉 감독의 압박 전술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클롭의 리버풀에서의 게겐-프레싱의 원조격이 사실 랑닉의 전술이었던 셈이다.
# 랑닉, 레드불에 날개를 달아주다
랑닉은 독보적인 전술뿐만 아니라 가라앉은 클럽을 되살려 무에서 유를 만드는 특별한 재주를 지녔다. 2004/05시즌 랑닉은 샬케에서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내며 이름을 알렸다. 그런데 갑자기 3부리그 호펜하임으로 떠났다. 알고보니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SAP'의 창업자 디트마르 호프가 '프로젝트 호펜하임'을 발족하면서 랑닉을 영입한 것이었다. 그 후 랑닉 체제에서 호펜하임은 2년 연속 승격에 성공하며 창단 첫 분데스리가 구단이 된다.
그의 두 번째 프로젝트는 바로 그 유명한 레드불이다. 슈트트가르트, 샬케, 호펜하임 등을 거치며 감독 생활을 이어가던 랑닉은 2011년 번아웃 증후군으로 지휘봉을 내려놓는다. 1년 후 병세가 호전된 그에게 레드불 창업자 디트리히 마테쉬츠가 전용 헬리콥터까지 타고 그를 모시러 간 일화는 이미 매우 유명하다. 레드불은 랑닉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했고 결국 랑닉은 레드불 계열의 두 클럽 RB잘츠부르크와 RB라이프치히를 동시에 오가며 전략을 수립하는 스포츠 디렉터로 임명된다.
랑닉이 두 클럽의 스포츠 디렉터직을 맡은 이 후 잘츠부르크와 라이프치히의 본격적인 비상이 시작된다. 랑닉은 클럽의 정체성은 물론 선수 관리, 스쿼드 강화, 심지어 직접 감독 업무까지 수행하며 승격, 우승, 스타 플레이어 양산 등 잭팟만을 터뜨렸다. 피르미누, 루이스 구스타부, 길피 시구르드손, 크리스티안 푸흐스, 뎀바 바, 티무 푸키, 사디오 마네, 나비 케이타, 황희찬, 미나미노 타쿠미, 다욧 우파메카노, 엘링 홀란드 등이 랑닉이 양산해낸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또한 최근 유럽 축구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는 선두주자격인 감독들 토마스 투헬(첼시), 율리안 나겔스만(바이에른 뮌헨), 랄프 하센휘틀(사우스햄튼), 위르겐 클롭(리버풀) 등이 랑닉의 산하에서 배웠거나 랑닉에게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감독들이다. 최근 3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클럽의 감독들이 누군지 한 번 찾아보라.
이렇듯 랑닉이 길러내거나 그에게 영향을 받은 선수들과 감독들이 현재 축구계를 이끌어나가고 있고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레드불의 풋볼 프로젝트와 랄프 랑닉이 현대 축구에 끼치고 있는 지대한 영향이 이제는 조금 느껴질 것이다.
# 랑닉의 맨유는 어떤 모습일까?
랑닉은 성공적인 클럽을 만들기 위해선 'the three K's'라는 세 가지 기본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Konzept(컨셉)', Kompetenz(역량)', 'Kapital(자금)'이다. 클럽 비전을 명확하게 갖추고, 실행할 우수 인력이 필요하며, 그에 따른 투자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랑닉은 현재 맨유에 부임한 이 후 자신의 철학에 맞는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보통의 감독이라면 새로운 팀에 부임한 이 후 자신이 생각했던 선수의 영입을 필수적으로 생각한다. 혹은 자신이 추구했던 전술을 그 팀에 입히기 위해 전술적인 색깔을 주입시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랑닉은 시작이 다르다. 코치진 보강을 우선시 하고 있다. 먼저 뉴욕 레드불스와 토론토FC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던 크리스 아르마스(Chris Armas) 수석 코치와 독일의 스포츠 심리학자 사샤 렌스(Sascha Lense)를 영입하며 일반적인 감독들과는 뭔가 다른(?)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포그바의 거취에 대해 말이 많은데 포그바를 어떤 식으로 설득시킬건가?" 라는 기자의 질문에 "포그바 설득? 포그바를 왜 설득해야하나? 우리는 맨유다. 모든 선수들이 우러러보고 오고 싶어하는 축구팀. 맨유는 선수에게 남으라고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 선수가 구단에 남고싶어해야한다. 선수가 남고 싶은 의지가 없다면 설득할 필요가 없다." 라고 대답했다.
선수 개개인의 역량보다는 구단의 기초, 초석을 다지고 시스템적인 부분과 심리적인 부분, 전술적인 부분을 더 중요시하는 랑닉 감독의 철학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몇몇 맨유의 레전드들과 출신 선수들이 맨유의 DNA도 없는 자가 맨유의 전통을 망치려한다는 의견을 내비추기도 하였지만 개인적으로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랑닉에게선 오히려 퍼거슨의 모습이 조금이지만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랑닉이 왔으니 맨유는 반등할 것이다! 라고 믿고 싶은 맨유팬들이 많겠지만, 현실은 약간 다를 수도 있다. 랑닉은 맨유와 2년 반 계약을 맺었다. 올 시즌이 끝날 때까지 감독직을 맡고, 그 이후로는 고문으로 일한다. 이 또한 올 시즌을 잘 넘겼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6년 계약을 했던 감독을 8개월만에 해고시킨 맨유라는 곳에서 심지어 랑닉이라고 해서 결과와 상관없이 맹신하진 않을 것이라는거다. 맨유와 같은 빅클럽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또한 랑닉이 유명세를 떨쳤던 팀들은 랑닉 부임 이 후 바닥에서 위로 반등하는 팀들이었다. 맨유는 이미 유럽에서도 최상위 계층에 있는 빅클럽이고 랑닉은 이런 모든 것이 갖춰진 팀을 처음부터 이끌어본 경험이 없다. 랑닉을 맹신하고 따랐던 선수들은 랑닉이 '나를 스타로 만들어준 은인' 이었기에 그를 따랐던 것이지만 현재 맨유 선수단 대부분은 이미 스타다. 랑닉은 이 선수단을 하나로 뭉치게 해야되고 자신을 내려놓고 팀으로써 하나될 수 있도록 독려하는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그렇다. 결국은 피지컬적인 모습은 건드릴 것이없고 멘탈리티를 뜯어 고쳐야 맨유의 반등을 이끌어낼 수 있을거라는 말이다. 그가 자신만의 리더십으로 호날두, 카바니, 바란, 포그바, 데 헤아과 같은 산전수전 다 겪은 스타플레이어들을 팀으로써 하나로 뭉쳐 새로운 맨유로 창조해낼 수 있을까?
맨유의 가장 큰 걸림돌은 클럽의 '관성'이다. 좋게 말하면 '역사와 전통', 나쁘게 말하면 '고집과 텃세'이다. 맨유로서는 랑닉의 영입이 포스트-퍼거슨 시대에 단행한 최대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찬란했던 옛 과거를 고이 수납하고 새로운 미래로 가는 문을 활짝 열었다는 자기선언일지 모른다. 이제 랑닉은 맨유의 든든한 자금을 앞세워 최고의 스태프들과 선수들을 끌어모을 것이다. 맨유의 역사와 자금, 랑닉의 혜안과 전술이라면 맨유의 발전할 앞길은 눈 앞에 창창하다.
개인적으로 진정한 맨유의 반등은 랑닉의 임시 감독직 이 후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찬란한 미래, 새로운 맨유로 가는 초석과 기반을 랑닉 감독 시기에 잘 다져놓고 그가 디렉터로서 맨유를 이끌 때 그의 안목과 의견이 들어간 새로운 감독의 부임으로 진정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성 시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이제 막 랑닉이 지휘봉을 잡기 시작했는데 계속해서 에릭 텐 하그(아약스)와 율리안 나겔스만(바이에른 뮌헨)같은 세계적인 명장들과 링크가 나는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레드불의 풋볼 프로젝트와 랄프 랑닉에 대해서 깊숙히 알아봤다. 어떤가 처음 필자의 말처럼 세계 축구의 흐름이 이제 몸으로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한 축구팬이라고 자부해도 좋다.
과연 앞으로 레드불 프로젝트의 행보는 어떠할까? 또 어떤 스타플레이어가 그들에게서 배출될까? 랑닉 하에서 맨유는 어디까지 변화될까? 랑닉의 철학을 잇는 새로운 축구 트렌드는 과연 무엇이 될 것인가? 선 굵고 강한 압박을 추구하는 현대 축구의 전술 흐름 속에서 그것을 돌파할 새로운 전술이 등장할까? 다시 한 번 티키타카의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있을까? 무엇이 됐든 정말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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